사미에 사원은 티벳 산남지구의 자낭(札囊 Zh n ng Xi n)현 야룽장푸강(雅魯藏布江)의 티벳 4대 성스러운산(四大神山) 가운데 하나인 하부르 산(哈不日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티벳에서 처음으로 출가한 승려들이 있던 사원입니다. 또한 티벳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 불상, 불경, 승려” 가 구비된 사원으로, 티벳불교이 만다라를 기본으로 건축하였기에 사람들은 ” 건축사상의 걸작”이라고 부릅니다.

사미에 사원

사미에 사원

만다라 (曼茶羅)는 고대인도에서 한 수행자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러 부처와 보살에 대한 공양을 강조하기 위해, 사각형 또는 원형의 흙으로 만든 단(壇)을 만들고 여기에 불상과 보살상을 설치한 후 수행 의식을 행하면서 공양을 올린것에서 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티벳불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만다라

티벳불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만다라

나중에 티벳불교에서는 만다라를 수행자들 수행의 한 방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사미에 사원은 이 만다라를 기초로 건축되어 있어, 티벳불교의 우주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미에 사원의 중심에는 2층의 대전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합니다. 또 이 건물의 네 방위에는 4개의 불전이 세워져 있고, 그 부근에 각각 2개의 작은 법당이 있습니다. 또한 이 대전의 좌우 양측에 작은 소전은 각각 태양과 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모서리 부분에는 각 탑이 세워져 있는데, 모든 악신과 마귀를 정복하여 천재지변을 제지하고자 하는 상징입니다. 이러한 모든 건축은 마지막으로 타원형의 담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사미에 사원의 전경

사미에 사원의 전경

사미에 사원의 대전은 현재 2층이지만 본래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층은 티벳양식으로, 2층은 중국의 한족식으로, 3층은 인도의 건축양식을 결합하여 특별하게 건축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사미에 사원을 삼양사(三 寺)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3층은 최근에 무너져서 없어졌고, 현재는 1층과 2층만의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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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에 사원 대전

 

사미에 사원은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고는 하나, 현재는 많은 부분들이 오랜세월 동안 무너지고 부서져서 분별하기 어려운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대전 아래층에 당시의 규모와 건축 배치, 위치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된 사미예 사원 전경의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당시의 치쏭 데짼(적송덕찬,赤松德贊) 티벳 왕은 사원이 완성된 후 인도에서 열두 명의 승려를 불러와서, 귀족 자제 7명에게 머리를 자르게 하고 승려가 되게하여 사미예 사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칠각사(七 士)라 불렀으며, 그들의 출현으로 티벳 불교 발권의 기초가 되었으며, 티벳의 모든 사원이 이곳을 기초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미에 사원 팻말

사미에 사원 팻말

대전의 복도 양쪽으로 벽화가 가득차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티벳의 역사와 티벳 불교의 생성과정,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공적도 그려져 있습니다.

티벳 라마교 겔룩파 ( 황교)의 창시자인 총카파가 불교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부터 제 9대 달라이 라마까지의 역사는 장장 92m 길이의 벽화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티벳의 “회화사기( 史 )” 라고 부릅니다.

사미사원 벽화

사미사원 벽화

본전 문앞에는 당나라 양식의 구리종이 걸려있는데, 이 종은 왕족 귀족이 탁발승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주조한 것으로 티벳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구리로 만든 종이라 전해집니다.

당나라 양식의  티벳 최초의 구리종

당나라 양식의 티벳 최초의 구리종

동문의 남쪽에는 유명한 “상예흥불증감비(桑耶 佛 碑)” 가 있습니다. 이 비석은 당시의 티벳왕인 치쏭 데짼이 799년 불교를 티벳의 국교로 한다는 내용이 고대 티벳어로 되어있습니다.

탑

상예흥불증감비(桑耶 佛 碑)

이러한 사미에 사원은 청나라 시기 큰 화재로 인해서 서적과 많은 건물이 불타 모두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달라이 라마 6세 시대에 재건된것으로, 1996년 중국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다음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자금을 투자하여 보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