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라트인의 기원과 이름
오이라트(瓦剌人)는 오늘날의 몽골족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원나라 시기에는 오이라(斡亦剌)라고 불렸고, 명나라 시기에는 와라(瓦刺), 청나라 시기에는 위라트(卫拉特) 또는 어루터(厄鲁特)라고 불렸습니다.
나중에 몽골족과 합쳐져 몽골족으로 불리게 되었고, 현대에는 모서 몽골(漠西蒙古) 또는 서몽골(西蒙古)로도 불립니다.
차가타이 몽골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오이라트인의 초기 거주지
오이라트인의 거주지는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팔하 지역(八河地区, 예니세이 강의 여덟 개 지류 지역)에 살았습니다. 이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부족마다 자신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당나라 시기에는 발카시 호수(巴尔喀什湖) 동남쪽, 지금의 신장 북부, 몽골 공화국 서부, 중서부 시베리아, 서남 시베리아 지역에 널리 분포했습니다.
원나라 시기에는 남쪽으로 내려와 알타이 산맥(阿尔泰山脉)과 설릉거 하(色楞格河) 하류의 넓은 초원 북서부에 정착했습니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변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는 오이라트의 역사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이라트의 한 분파인 토르후트 부(土尔扈特部)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볼가 강(伏尔加河) 유역에 정착했고, 일부는 우루무치(乌鲁木齐) 주변과 타르바하타이(塔尔巴哈台) 지역에 남았습니다.
오이라트는 청나라 순치 3년(1646년)에 청나라에 귀속되었고, 오랫동안 오늘날 신장 지역의 주요 주민이 되었습니다.
위라트인과 몽골인의 구별
오이라트인들은 자신들을 위라트인(卫拉特人)이라 불렀고, 몽골 본부 사람들과 구별했습니다.
1640년 9월, 몽골 칼카부(蒙古喀尔喀部)와 위라트 지도자들이 《몽골-위라트 법전》(《蒙古一卫拉特法典》)을 제정하여 양측을 ‘몽골(蒙古)’과 ‘위라트(卫拉特)’로 구분했습니다.
이 법전은 봉건 영주들이 노동자들을 통치하고, 칼카부와 위라트 네 부족 간의 관계를 조정하며, 외부 세력에 공동 대응하는 동맹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시한의 활동과 오시트 칸국의 설립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 구시 칸(固始汗)은 타청 지역(塔城地区) 등 넓은 지역에서 위라트 연맹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후금(청나라 전신)에 자발적으로 귀속되었습니다.
이후 우루무치(乌鲁木齐) 주변에서 4만 명의 오시트인(和硕特人)을 이끌고 청장 고원(青藏高原)으로 이동하여 오시트 칸국(和硕特汗国)을 세우고, 다시 청나라에 자발적으로 귀속되었습니
다. 이로써 청나라의 다민족 국가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는 중국의 다민족 국가 발전에도 기여한 것입니다. 현대에는 청해성 해서주 더링하시(青海省 海西州 德令哈市)에 고시한 기념 공원이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