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

중국어 :    西藏佛教

중국어 : 藏传佛教 

티벳의 토속신앙 - 본교

티벳의 평균 해발은 4,500m 가 넘는 산들이 많고, 세계의 지붕 또는 설역고원 이라고 할 만큼 주변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자연은 두려움의 존재이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기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숭배하게 되었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절기 문화들이 대부분 원시 신앙의 요소인 산, 물, 동식물과 관련된 자연숭배, 정령숭배, 토테미즘으로 집약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티벳인들은 예로부터 산신, 수신, 지신, 천신 등을 섬기는 신령숭배가 많았으며, 이러한 각종 신령을 숭배하고 재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고, 감사와 속죄를 표시하면서, 신령이 계속해서 보호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종교 신앙은, 불교가 티벳에 전해지기 오래전부터 티벳에 뿌리를 내려 토착 종교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분교(苯教)인 것입니다.

본교와의 융화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는 티벳에는 이 본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송첸캄포가 당나라와 네팔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를 전파하려고 하였지만, 기존의 기득권을 확보한 본교의 추종자들로부터 많은 반대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본교를 탄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본교를 혼합하여 티벳만의 독특한 불교를 궤도에 올려놓습니다.

이후 770년 치송데첸이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더욱 극단적인 방법으로 탄압하였고, 결국 세력은 많이 축소되어 발원지인 카일라스산 근방으로 한정됐습니다.

외지에서 전해져온 불교는 본교를 탄압하면서도 생존하기 위해 본교와 민간 종교의 많은 내용과 형식을 수용하였으며, 주변의 여러 가지 다중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융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으로 불교는 티벳 지역만의 특색있는 티벳불교를 형성하였습니다.

파드마삼바바의 사미에 사원 건설

송첸캄포의 손자인 치송데첸은 당시 네팔에 머물고 있던 인도의 중관학파 승려 샨 타락 시타와 그의 제자 파드마삼바바를 초청해 밀교를 도입하면서 티벳의 불교는 밀교(탄드라불교)의 강한 성격을 띄게 됩니다.

샨 타락시타는 왕실의 후원하에 첫 번째 불교사원인 사미에 사원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파드마삼바바는 불교의 확산을 막는 사악한 악령들을 물리치고 개종시는데 자신의 힘을 사용합니다. 또한, 유명한 <티벳 사자의 서>란 글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엄청난 티벳어로 된 불경 서적을 발간하였으며, 풍부한 교리와 교의뿐만 아니라 온전히 정형화된 불교사원의 조직 구조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엄격한 학습제도와 수행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특별한 불교를 형성하게 됩니다.

특별히 티벳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활불전세제도(活佛世制度)등을 확립함으로써 중국의 불교, 발리 언어계열의 불교와는 다른 온전하고 완전한 하나의 불교 지파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티벳불교의 4대 종파

티벳불교는 교리상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어떠한 경전을 연구하고 따르냐에 따라 크게 4가지 종파로 분리합니다.

초창기의 샨 타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의 경전과 가르침을 받드는 구파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새롭게 번역하고 해석한 경전을 연구하는 신파로 나뉘어 지는데, 구파로는 닝마파(宁玛派)가 있고, 나머지 카규파(噶举派), 샤카파(萨迦派), 겔룩파(格鲁派)는 신파에 속합니다.

1. 닝마파

닝마파라는 뜻은 티벳어로 “오래된 종파”라는 뜻으로 가장 최초에 성립된 종파로서, 초창기 사미에 사원을 건설한 인도의 밀교 승려 파드마삼바바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닝마파는 명상 수행법의 하나인 “족첸”이라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데요, 족첸은 일상 속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관찰하는 수행법입니다. “족”은 “완벽한, 위대한”이란 뜻이고, 첸은 “실현, 완성”이란 뜻입니다.

초창기 파드마 삼바바를 따르는 닝마파들은 결혼한 승려들이 많았으나, 후에 생겨난 종파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독신주의 전통을 발전 시켰습니다.

이들은 둥글고 끝이 뾰족한 붉은 판디트 모자인 뺜샤를 쓰기 때문에 “홍모파”라고 부릅니다.

2.샤카파 Sakyapa

샤카파는 중앙 티벳의 남쪽 지방 쿤씨의 씨족 종파로서 티벳 불교중 유일한 씨족 불교입니다.

1073년 쿤 쿤총갈포(Khon Konchog Gyalpo, 1034~1102)가 신역 밀교를 전수받아 사카 지방에 사캬사라는 가문의 사찰을 창건하고, 그의 아들 사첸 쿤가닝포(Sachen Kunga Nyinpo, 1092~1158)가 완성한 밀교의 한 종파입니다.

샤카파의 최겔팍파 (1235~1280)’은 원나라에 가서 쿠빌라이 칸의 왕사가 되었으며, 원라라에선 최겔팍파를 파스파(八思巴)라고 불렀으며, 그에 의해 만든 몽골 문자를 파스파 문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최겔팍파는 몽골의 문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고마움에 최겔팍파에서 티벳의 통치권을 넘겨주었으며, 13세기에서 14세기까지 샤카파는 티벳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홍, 백, 회색을 주된 문양 색으로 사용하므로 샤카파를 “화교”라고도 부릅니다.

3. 카규파

11세기에 재가생활을 하면서 불경의 번역가로 유명한 마르파를 추종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종파입니다.

마르파(Marpa, 1012~1093)는 세 차례에 걸친 인도 유학을 통해, 대성취자 나로파(Naropa)와 마이트리파(Maitripa)로부터 여섯 가지의 교리를 배워서 카규파를 세웠습니다.

한때는 겔룩파를 상대로 티벳의 세속적인 권력 쟁취를 위해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까지 성장했으며, 라마들이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는 주장 역시 이 카규파의 한 부류인 카르마파 린포체(Karmapa Rinpoche)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현재까지 17대 카르마파가 존재하고 있는데요. 지난 2000년 1월 14세의 나이로 출푸 사원에 있던 17대 카르마파는 인도로 망명해 다람살라에 살고 있습니다.

카르마파는 다른 파에서 쓰는 판디드 모자와는 다른 각이 진 특이한 검은색의 모자를 쓰고 있어, 일명 “흑모파”라고 부릅니다.

4.겔룩파 (황모파)

14세기 말 총카파(Tsong-kha-pa, 宗喀派, 1357~1419)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4대 종파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성립되었습니다. 겔룩은 티벳어로 “덕행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총카파는 문수보살로부터 영감을 얻은 후, 불교의 수행론을 강조하였습니다.

아티샤(Atisa, 982~1054)는 서티베트의 대승과 소승, 현과(顯敎)와 밀교 등을 망라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불과 종이 석 장의 앞뒷면에 요약한 보리도등론(Lam rim, 菩堤道燈論) 을 저술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돔퇸에게 계승되어 돔퇸이 카담파(Kadam-pa,噶當派)를 새로 세우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4세기 후반 북부 티베트의 안다(安多, Amdo)에서 태어난 총카파는 어려서부터 중앙 티베트에 유학하며, 신(新)샤카파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아티샤가 저술한 보리도등론에 기초하여 불교의 한 종파를 세우고, 1409년 간덴사(Ganden,甘丹寺)를 창건하고 죽을때까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가 주술적인 닝마파 등을 배척하고, 엄격한 계율에 터잡아 세운 티벳 불교의 개혁파를 ‘겔룩파’라 합니다.

이 겔룩파는 티벳의 극서 지방에서 동쪽의 암도 지방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는데요. 제 3대 달라이 라마 소남강쪼(1543~1588)가 몽골을 방문한 후 몽고인의 후원으로 겔룩파는 중앙 티벳에서 지배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제5대 달라이 라마 카왕 로상 강쪼(1617~1682)는 몽골군의 도움으로 티벳의 종교계와 정치계를 장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위치와 권위는 현재에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와 판체라마 모두 겔룩파에 속합니다.

노란색의 판디트 모자를 쓰기 때문에, 일명 ‘황모파’(黃毛派, Yellow Hat Order)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