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포탈라궁, 노블링카, 드레풍 사원 – 티베트의 깊은 숨결을 찾아
아침이 밝았다.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밀려든다.
바람은 조용히 도시를 감싸고, 새들은 저 멀리 천천히 날아오른다.
창가에 기대어 바라본 라싸의 아침은 여전히 고요하다.
먼 하늘 위로 퍼지는 햇살이 도시를 감싸며, 하루가 천천히 열린다.
조금 더 여유롭게 맞이하는 아침.
우리는 포탈라궁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호텔 로비에서는 여행자들이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오늘의 일정을 공유한다.
간단한 조식을 마친 후, 차에 올라타 라싸의 거리를 지나간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바람.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저 멀리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포탈라궁.
붉고 흰 벽이 태양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가까워질수록, 마음속 설렘과 경외감이 깊어진다.
하루에 정해진 인원만이 입장할 수 있는 이곳.
미리 예약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천천히 궁전으로 향한다.
포탈라궁의 입장은 실명제로 운영된다.
일주일에 한 번만 예약할 수 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다.
한 번의 관광은 단 한 시간 동안만 허용된다. 포탈라궁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
그 짧은 한 시간이, 이 웅장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에.
궁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하얀 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기도 깃발.
낮게 울려 퍼지는 염불 소리.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몸은 이제야 조금씩 이 고도에 적응하는 듯하지만, 포탈라궁으로 오르는 길은 또 다른 이야기다.
경사가 심하지 않지만, 높은 고도에서는 작은 오름도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공기는 점점 희박해진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깊숙이 가라앉는 묵직한 압박이 느껴진다.
그 계단을 오르는 일이 이렇게 숨 가쁠 줄이야.
한 걸음, 또 한 걸음.
계단을 오를수록 몸은 둔해지고, 들숨과 날숨이 거칠어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공기가 묵직해진다.
가이드는 천천히 걸으라고 하지만, 마음이 앞선다.
위로, 더 위로. 저 끝에 닿고 싶다.
한참을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라싸의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3,650m, 이곳은 하늘과 맞닿은 성채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몇백 년 전에도, 몇천 번의 발걸음이 이 계단을 올랐을 것이다.
숨을 고르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궁전의 입구에 닿으면, 그 순간이 마치 경계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신앙의 중심지.
문고리에 스며든 손때.
닳아버린 계단.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촛불.
모든 것이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고 있다.
포탈라궁은 백궁과 홍궁으로 나뉜다.
백궁은 한때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공간.
간소하지만 세련된 구조.
홍궁은 그보다 훨씬 장엄하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모셔진 공간.
금박으로 덮인 벽.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촛불.
낮게 울려 퍼지는 불경 소리.
공간을 채우는 건 건축이 아니라,
이곳을 지켜온 믿음과 시간들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궁전 곳곳을 지나간다.
숨이 차오르지만, 눈을 감고 한순간 멈춘다.
이곳을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 기도가 공기 중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문득 손을 뻗어 벽을 만져본다.
차갑고 단단한 표면,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든 수많은 손길들.
몇백 년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며 이곳을 찾았을까.
그 기도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내려오는 길, 다시 한 번 궁전을 돌아본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간 자리.
손때가 묻은 문.
오래된 불상들.
바람이 불어오고,
누군가는 기도를 올린다.
그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작은 울림을 남긴다.
이곳을 떠나기 전, 한동안 멈춰 서서 바라본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이곳의 깊이를 온전히 느끼기에 짧았다.
포탈라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이어진 신앙과 역사,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공간이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 날이 오면,
오늘보다 더 천천히,
더 깊이 이곳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돌린다.
노블링카 – 여름궁전에서의 한 줄기 쉼
포탈라궁을 떠나 노블링카로 향한다.
두 장소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로 1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차량이 흔들릴 때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건조하면서도 부드럽다.
노블링카, 그 이름은 ‘보석 공원’을 뜻한다.
포탈라궁이 티베트의 겨울궁전이라면, 노블링카는 여름을 위한 궁전이다.
1715년, 달라이 라마 7세가 처음 건립한 이후, 역대 달라이 라마들이 이곳을 여름의 거처로 사용했다.
강렬한 붉은 벽이 도시를 압도하는 포탈라궁과는 달리,
이곳은 초록빛이 가득하다.
푸른 나무들, 만발한 꽃들, 넓게 펼쳐진 정원.
그 안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정문을 지나면, 넓게 펼쳐진 정원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다.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며,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다.
한 걸음 내딛자,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와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티베트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도,
이곳의 나무들은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돌담 위로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곳곳에는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이 정원 속에서는 오직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만이 들린다.
궁전 내부로 들어서면,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공간과
외국 사절을 맞이했던 응접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응접실의 벽에는
티베트 건국 신화를 담은 벽화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하늘을 나는 신수, 웅장한 산맥을 배경으로 한 전설적인 장면들.
그 모든 것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이야기해준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발걸음을 멈춘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바람은 부드럽게 나뭇잎을 흔들고,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이곳은 여름이 되면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매년 여름, 티베트의 가장 큰 전통 축제 중 하나인 쉐둔절(雪顿节), 요거트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쉐둔’은 요거트를 뜻한다.
과거에는 수도승들이 긴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첫 식사로 요거트를 먹으며 축제를 시작했다.
이제는 티베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전통 가면극인 참댄스와 노래 공연을 즐기며 축제를 기념한다.
노블링카의 정원은 축제 기간 동안 더욱 화려해진다.
전통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형형색색의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꽃보다 더 화사한 미소가 곳곳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 장관을 볼 수 없다.
축제의 시기가 맞지 않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울려 퍼지는 노래도,
정원을 가득 채운 화려한 풍경도
오롯이 상상 속에서만 머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공기 속에는 분명 축제의 기억이 남아 있다.
노블링카의 나무들이 그날의 음악을 기억하고,
바람이 그 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지만,다음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다.
차에 오르면, 창문 밖으로 노블링카의 푸른 나무들이 점점 멀어지고,햇살에 반짝이는 라싸의 풍경이 펼쳐진다.
라싸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12km.
차로 30분쯤 달리면 감보 우체산 기슭에 닿는다.
창문을 여니 공기가 달라진다.
서늘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멀리서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목적지다.
여행의 끝자락, 발길이 닿은 곳은 티베트의 하늘 아래 가장 거대한 사원,
드레풍사원(哲蚌寺).
1416년, 겔룩파의 창시자인 쫑카파의 제자인
잠양 초제(降央曲結)가 세운 이곳은,
한때 1만 명이 넘는 승려들이 머물며 수행했던
티베트 불교의 심장부였다.
포탈라궁이 세워지기 전까지 달라이 라마의 거처였던 곳.
그러나, 문화혁명의 거센 폭풍이 이곳을 덮쳤다.
사원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고, 과거의 웅장함은 희미해졌다.
한때의 위용은 사라졌지만, 기도의 숨결은 여전히 남아 있다.
드레풍(哲蟹).
‘흩어진 볏짚 더미’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산비탈을 따라 흩어진 흰 건물들.
멀리서 보면 볏짚을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사원에 들어서면,
길게 이어진 회랑,
벽화,
향 피어오르는 작은 법당들.
그리고,
간덴궁, 응악파, 로세링, 고망, 데양.
네 개의 승가대학에서 승려들이 불경을 외우고 있다.
거대한 탱화가 펼쳐지는 날.
쉐둔절(雪顿节), 요거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다.
쉐둔절은 본래 인도의 하안거에서 유래하였지만, 티베트에서는 불교 수행자들에게 요거트를 공양하는 전통과 결합하여 축제로 발전했다.
티베트에서는 승려들에게 요구르트를 공양하는 풍습에서 비롯된 축제다.
드레풍 사원의 높은 산등성이에서 한 올 한 올 펼쳐지는 거대한 탱화.
불화가 모습을 드러낼 때, 사원의 마당에는 순례자들이 가득 찬다.
그들은 손을 모으고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내가 찾은 날은 축제 기간이 아니었다.
북소리도,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 광장.
그러나 바람 속에는 지난 축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했다.
쉐둔절의 장엄한 순간을 직접 마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이곳에서,
그 웅장한 불화를 바라보며,
순례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날을 기다리며.
라싸에서의 마지막 밤.
도시로 돌아오는 길.
낯익은 풍경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겨우 이틀이었을 뿐인데, 라싸의 거리와 골목, 창가에 걸린 작은 깃발까지도 낯설지 않다.
익숙한 골목.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
이 도시가 서서히 내게로 들어온다.
어쩌면 나는 이미 이곳에 속해 있었던 걸까.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같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고원의 바람.
포탈라궁이 황금빛 조명 아래 위엄 있게 서 있다.
거대한 벽과 수많은 창문이 따스한 빛을 머금고, 어둠 속에서도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낮의 분주함을 벗어던진 도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
노블링카의 꽃향기,
드레풍 사원의 염불 소리,
쉐둔절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까지.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포탈라궁을 바라본다.
라싸의 공기, 바람, 빛.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슴에 새긴 채.
내일이면 떠날 시간.
라싸의 마지막 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