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茶)
중국에서 차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인들은 차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처음 중국에서 차를 먹기 시작한 것은 삼황오제 시대부터라고 알려졌습니다. 삼황오제는 3명의 황제와 5명의 제가 다스리던 중국 신화 속의 인물이며, 이들 8명의 제왕을 중국 문명의 시조라 추앙하고 있습니다.
세명의 황제 중 염제 신농 (炎帝 神农)은 불(火)과 농업을 관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불 사용법과 농사짓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농경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매일 100여 종의 식물을 직접 먹어 보아, 독초가 있는 식물과 식용으로 가능한 식물을 가려내어 백성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다 너무나 많은 독초를 먹어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해독제를 사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나서 그 나뭇잎을 먹어보았더니 신농의 배는 통증이 사라지고 독이 해독되었습니다.
그 나뭇잎은 위장을 검사하듯이 독초의 독성을 무력화시키고 신농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신농은 이 나뭇잎이 자기 위장을 검사하듯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기에 검사하다라는 뜻의 『查』라고 불렀습니다. 이 『查』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茶』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습니다.
보혜선사 오리진(吴理真)
처음에는 야생에 있던 차 나뭇잎을 따서 달여 먹었으며, 차를 재배하여 먹기 시작한 것은 2000여년 전 서한 시대부터라고 역사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서한 시대에 오리진(吴理真)이라는 사람이 야생 차나무의 종자를 심어서 일곱 그루의 차나무를 당시 서주의 파촉이란 지방의 몽정산이라는 곳에서 키우는 데 성공하였고, 그 이후로 차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오리진은 약초를 캐어 생계를 이어가는 약초꾼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오리진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약초를 캐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눈이 침침해지고 목이 자꾸 마르는 병에 걸리자 오리진은 달여 먹었으며 정상 부근에서 야생차의 잎을 따다가 달아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에 오리진은 차 나무를 재배하기로 마음먹고 여러 번의 시행 끝에 일곱 그루의 차나무를 키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일곱 나무에서 채취한 차를 특별히 신선이 마시는 차라는 의미의 선차(仙茶)라고 불렀습니다.
이 오리진의 선차는 당나라 현종 때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황실에 바치는 공차로 상납 됐습니다. 천년이 넘게 황제에게 공차 된 선차는 지금도 황차원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오리진은 사후에 차를 재배하고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선사로 봉해지면서 후대에 보혜선사 오리진(吴理真)이라고 불리며, 몽정차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차 재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의 몽정산
일곱그루의 나무가 있는 몽정산은 차의 세계에서는 성산으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몽정산은 쓰촨성 야안시 멍딩산 풍경구역 (蒙顶山风景名胜区)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되어있고, 길이는 약 10km, 너비는 4km입니다. 해발 약 1,456m의 가장 높은 상청봉을 중심으로 연꽃 모양의 5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몽정산은 아열대의 몬순 기후로 습하기로 유명하고 항상 비가 오는 도시라고 칭하는 야안시(雅安市) 속해 있습니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없고 여름에는 극심한 더위가 없으며, 연평균 15°C로 선선한 날씨입니다. 1월 평균 연평균 5°C, 7월 평균 연평균 23°C입니다.
몽정산(蒙顶山)은 90%가 숲으로 덮여 있어 일명 【천연 산소바(Bar)】 라 일컫어 지고 있으며, 항상 안개와 비에 젖은 습한 기후는 차 재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몽중산이 있는 야안시는 연중 300일 정도 비가 옵니다.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 가 넘는데, 비가 오지 않은 날도 항상 운무가 끼어 있어, 연간 일조량이 1000시간이 채 안 됩니다. 강한 햇빛의 직사광선 대신 운무로 인해 부드럽게 산광 되는 해빛을 받는 몽정산은 차 재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강중수(揚子江中水),몽정산상차(蒙頂山上茶)
양쯔 강 중령천(中泠泉) 물로 몽정산(蒙頂山)에 나는 차로 우려낸 차의 맛은 수많은 차 애호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불교에서 아귀로 상징되는 사후 중생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의식이 있는데요 이 의식을 몽산시식(蒙山施食)이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이곳 몽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몽정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차는 10여 종이 넘습니다. 감로, 석화, 황아, 만춘은엽, 옥엽장춘 등의 차가 재배되는데, 이중 감로와 황아는 중국 10대 명차에 속해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천개사 (天盖寺)
멍딩산 정상에 위치한 천개사는 한 왕조에 설립되었으며 송 왕조에 재건되었습니다. 8,000㎡의 규모에 12,000년 된 은행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더욱 평화롭게 보입니다.
티에까이스 중앙에는 돌기둥으로 만들어진 대전이 있는데요, 몽정차의 창시자인 오리진(吴理真)의 전신 동상과 몽정산 차의 역사를 묘사한 그림과 글들이 있습니다. 사당 앞마당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매점들이 있으며, 이곳에 앉아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몽천정 (蒙泉井)
천개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감로(甘露)라고 적혀있는 몽췐징(蒙泉井)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오리진이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차나무를 재배하였다고 합니다.
이 우물물은 비가 많이 와도 넘치지 않으며,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물에는 돌로 된 뚜껑이 있는데요, 이 뚜껑을 열어두고 우물 안으로 소리를 지르면 곧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황차원(皇茶园)
몽천정 우물 옆에는 황차원(皇茶园)이라 적혀있는 낮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오리진이 심은 일곱 그루의 차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차를 따르는 18가지 기술 (龙行十八式)
몽정산의 독특한 차를 따르는 기술은 찻주전자의 긴 주둥이를 이용합니다. 몽정산에서 수행하던 선혜대사는 무술과, 참선, 다도를 융합하여 용행 18식이라는 기술을 창안하여 몽정산 수도사들에게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청나라 시기에 와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현재 청두의 여러 차관에서 이러한 자세로 차를 따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차마고도 (茶马古道)의 시작점
야안(雅安)은 차 문화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고대 차마고도(茶马古道)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사서에 따르면 전한시대부터 몽정산 차는 티벳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찻잎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당나라 때부터 차마통상, 차마무역에 의한 차마도고의 길이 열렸습니다.
즉, 당나라 시대부터 진정한 차마고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에 오대, 송,명,청의 시대를 통해 몽산차는 항상 역대 티벳 왕조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벳으로 시집을 오면서 차마고도를 통한 차의 교역량은 급증하였습니다. 티벳인들이 사는 칭하이 고원과 서장지역은 고지대이면서 온도가 낮고 설산과 초원이 많은 지역입니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 때문에 티벳인들은 주로 목축업이 발달하였으며, 육류와 유제품 그리고, 청보리로 만든 밀가루와 버터 차를 반죽한 짬바를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음식들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입니다. 티벳인들은 건강을 위해 기름기를 없애고 소화를 돕는 음료로 식사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티벳인들은 차를 즐겨마셔서 식상의 균형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티벳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은 차를 재배할 수 없었습니다. 차는 쓰촨 성과 윈난 성에서 운반을 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의 필요성이 있었기에 차마고도의 교역은 천 년 이상 계속되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차마고도의 역할은 말 그대로 차(茶)와 말(马)의 교역입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차를 운반함으로써 티벳에게 차를 내어주고, 대신 전략적으로 필요한 말과 교환하여서 변경의 안정을 도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