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샤(阿底峡)
이번에는 고대 인도의 고승이자 불학자인 아티샤(阿底峡, 982~1054)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티샤의 한자 이름은 무극자재(无极自在), 본명은 월장(月藏), 법명은 연등길상지(燃灯吉祥智)입니다. 그는 바그푸르(巴格浦尔, 다른 설에 따르면 벵갈 또는 비하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초기 생애와 학문적 배경
아티샤(阿底峡)는 11세에 나란다사(那烂陀寺)에서 각현(觉贤) 스님에게 불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밀교 대사인 아부도저파(阿缚都底波陀)에게 밀법을 배웠고, 그 후에는 초계사(超戒寺)에서 나로파(那洛波) 대사에게서 현교와 밀교의 두 가지 수행법을 연구했습니다.
29세에는 보리개야 모저사(菩提伽耶摩底寺, 다른 설에 따르면 오탄도보리사)에서 계호(戒护)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계율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법호(法护) 스님에게서 현교의 경전을 배웠습니다.
금주와 실론에서의 수학
1013년, 아티샤(阿底峡)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 군대가 인도를 침입하기 전에 금지섬(金地岛, 현재의 수마트라)으로 가서 법칭(法称) 스님에게 밀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실론(锡兰, 현재의 스리랑카)으로 가서 대소승 경론과 밀교 주문을 연구했습니다.
인도로의 귀환과 학문적 성과
44세 때, 아티샤(阿底峡)는 인도로 돌아와 초계사(超戒寺)의 주석으로 임명되었고, 그의 명성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는 보생적(宝生寂), 각현(觉贤), 아부도저파(阿缚都底波陀), 동비파(动毗波), 적현(寂贤) 등과 함께 ‘초계사 팔현’으로 불렸습니다.
아티샤 존자의 학설은 현교를 주로 하였고, 계율을 중시하며 청정한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티벳에서의 불법 전파
아티샤(阿底峡)의 명성은 티벳에도 전해졌습니다. 당시 티벳은 랑다르마(朗达玛) 멸불 이후 백 년 넘게 불교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티벳의 왕 예시워(益西沃)와 그의 조카 장취워(降曲沃)는 아티샤를 초청하여 티벳 불교를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59세 때, 아티샤는 티벳인의 간절한 법 구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티벳으로 가서 불법을 전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1042년에 티벳에 도착하여, 이후 13년 동안 불법을 널리 전파하고, 사악한 논리를 타파하며 티벳 불교의 부흥에 기여했습니다.
《보리도등론》과 티벳 불교에의 영향
아티샤(阿底峡)는 1054년 여름, 티벳 니탕사(聂塘寺)에서 72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인 후계자 종둔바(仲敦巴, 1004~1064)의 조력을 받아 카담파(bkah-gdams-pa)라는 종파를 창설하였고, 티벳의 정통과 불교의 재흥에 힘썼습니다.
그의 교리는 저서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 Bodhipathapradipa, Byan chub lam gyi sgron ma)》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책은 아티샤가 코르레 왕의 초청으로 1042년 티벳에 들어가 토링사에서 티벳 왕족의 부탁을 받고 쓴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티샤의 교학이 담겨 있으며, 카담파를 거쳐 총카파에게 이어져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의 기본이 되었고, 티벳 밀교의 교학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론
아티샤(阿底峡)는 티벳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으며, 티벳 불교의 부흥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티벳 불교의 많은 종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청정한 수행과 계율을 강조하며 불교의 체계적인 학문적 기초를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