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 린포체
티벳 여행 중 “구루 린포체”라는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석처럼 귀한 스승”이라는 의미로, 8세기에 티벳에 밀교를 전파한 인도의 수행자 파드마삼바바(莲花生, 연화생)를 존칭하는 이름입니다.
탱화나 불상에서 왼손에 끝부분이 세 갈래로 되어있고, 중간 부분이 세 개의 해골로 구성된 지팡이를 쥐고 있는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초기 생애
파드마삼바바는 “연꽃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8살 때 연꽃 위에서 인도의 한 왕국의 왕에게 발견되어 왕자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는 왕국을 다스릴 높은 신분으로 자랐지만,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티송데쩬의 불교 장려
티벳의 38대 임금 티송데쩬 (赤松德赞) 시대에, 그는 불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송첸캄포 왕이 불교의 터전을 닦았으나, 대부분의 귀족과 백성은 여전히 토착 종교인 뵌교(苯教)를 믿고 있었습니다. 티송데첸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뵌교 사제들과 귀족들 사이에 반감이 커졌고, 뵌교 사제들은 몰래 왕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사미에 사원의 건설
티송데쩬은 티벳 최초의 사원인 사미에 사원을 건설하여 불교를 확장하려 했습니다. 그는 인도로 사람을 파견하여 유명한 승려인 샨타라크쉬타를 모셔왔습니다. 그러나 뵌교 귀신들의 방해로 사원 건축이 어려웠고, 샨타라크쉬타는 파드마삼바바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파드마삼바바가 티벳에 도착하자 티송데쩬은 많은 금으로 환영했지만, 파드마삼바바는 금을 먼지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주문을 외워 금으로 바꾸는 도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샨타라크쉬타와 함께 사미에 사원으로 가서 귀신들을 물리쳤고, 779년에 드디어 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티송데쩬은 7명의 귀족 자제들을 최초의 승려로 사미에 사원에 두고 불경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산스크리트어나 중국어로 된 불경을 티벳어로 번역하여 티벳에 불교를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
파드마삼바바는 티벳 전역의 산, 호수, 동굴, 바위 등에 수행의 비법이나 예언을 기록한 경전들을 숨겨 놓고, 후에 축복받은 사람이 발견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14세기에 티벳 북부 지방의 동굴에서 처음 발굴되어 티벳 일대에 전파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서양에 소개되어 “가장 차원 높은 정신과학”이라고 극찬받은 책이 바로 “티벳 사자의 서”입니다.
나찰의 나라로의 출발
불교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 파드마삼바바는 나찰의 나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나찰은 사람을 잡아먹고 지옥에서 죄수를 못살게 구는 악귀로, 그들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인간은 모두 그들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파드마삼바바는 말을 타고 오색 무지개를 뿜으며 공중으로 사라졌습니다. 떠나기 전 그는 왕과 왕비, 신하들에게 “낮에는 관세음보살을, 밤에는 나를 스승으로 삼아 수행하라”고 가르침을 주고 떠났습니다.
닝마파의 시조
파드마삼바바는 티벳의 귀신들을 마음대로 다스리며 티벳의 수호신으로 신앙받고 있습니다. 그의 서적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닝마파(寧瑪派)는 현재 티벳의 중요한 4개의 종파 중 가장 오래된 종파로, 파드마삼바바를 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네팔과 부탄의 여러 곳에서도 파드마삼바바와 관련된 성지가 있으며, 닝마파 수행자들은 지금도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