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 샤가파의 요람
티벳 불교 샤가파(萨迦派, Sakya Sect)의 본산인 샤가 사원은 중국 티벳 자치구 시가체(르카쯔, Shigatse) 지역 샤가 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073년 곤 콘촉 갸포(Khon Konchog Gyalpo)에 의해 창건 된 이곳은 샤가 왕조의 정치·종교적 중심지로 성장하였습니다.
13세기에 이르러, 샤가 사원은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 칸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티벳 불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샤가파는 원나라 황실과 협력하며 티벳 지역을 통합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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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건축 양식과 신비로운 분위기
샤가 사원은 본래 남부 사원(Southern Monastery)과 북부 사원(Northern Monastery)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남부 사원뿐이며, 북부 사원은 대부분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붉은색, 흰색, 검은색 – 신비로운 삼색의 벽
샤가 사원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붉은색, 흰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벽면입니다. 이 세 가지 색상은 각각 문수보살(Manjushri, 지혜), 관세음보살(Avalokiteshvara, 자비), 금강수(Vajradhara, 힘)를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햇살이 비칠 때, 이 세 가지 색상이 벽면에 신비로운 빛의 조화를 만들어내며,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요새형 사원의 위엄
샤가 사원은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성채(城堡) 형태의 건축물로 설계되었습니다. 두꺼운 성벽이 사원을 둘러싸고 있으며, 한때 해자로 보호되던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 역할도 수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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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깃든 네 개의 기둥
사원 내부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네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원나라 황제의 기둥“: 이 기둥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이 직접 하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원나라의 강력한 후원을 받은 샤가파는 티벳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기둥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상징합니다.
“호랑이 기둥“: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가 등에 짊어지고 산을 넘으며 가져왔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티벳 불교의 신비로운 교리를 반영하는 이야기로 여겨집니다.
“야크 기둥“: 야크가 뿔로 기둥을 떠받치며 운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야크는 티벳 고원의 강인한 생명력을 대표하는 동물로, 이 전설은 샤가 사원의 기둥이 오랜 세월을 견뎌왔음을 의미합니다.
“검은 피의 기둥“: 전설에 따르면, 이 기둥은 바다의 신이 흑혈(黑血)을 뿜어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신성한 존재의 개입을 통해 세워진 신비로운 구조물로 해석되며, 방문객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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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제2의 둔황 – 방대한 문화유산
샤가 사원은 “중국 제2의 둔황“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천 권의 필사본 경전(贝叶经, 베엽경): 고대 인도의 베엽경(야자수 잎에 필사한 경전)부터 티벳 불교의 핵심 경전까지 다양한 불교 문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티벳 불교의 역사를 기록한 웅장한 벽화: 사원의 내부 벽면에는 700년 이상의 역사를 담은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의 불상과 사탑: 샤가 사원에는 다양한 시기의 불상과 사탑이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 불상은 금과 은, 라피스라줄리 등 희귀한 재료로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사원 내부에는 고대 경전을 보관하는 거대한 벽(藏经墙, 경서 벽)이 있습니다. 높이 9m, 길이 60m에 달하는 이곳에는 수천 권의 경전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둘러보면 마치 책 속에 파묻힌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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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가 왕조와 티벳 통치
샤가 사원은 한때 티벳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샤가 왕조(1268~1354년)의 수도 역할을 하였습니다.
8대 샤가 판디타(萨迦班智达, Sakya Pandita)는 티벳 불교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 지도자로, 원나라 황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의 조카 파스파(八思巴, Phagpa)는 쿠빌라이 칸의 총애를 받아, 티벳 지역의 실질적 통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티벳어를 기반으로 한 몽골 문자(八思巴文, ‘파스파 문자’)를 창안하여, 몽골 제국의 공식 문자로 채택되게 하였습니다.
샤가 사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단순한 종교적 공간을 넘어 정치와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티벳과 몽골, 원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