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불교 예술의 보고
서장(티벳) 자치구 아리 지구 자다현 북쪽 40km.
3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불교 유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토석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둥가(东嘎, Dongga)와 피양(皮央, Piyang) 석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비로운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곳입니다.
둥가 지역의 석굴군은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규모가 큰 불교 고대 석굴 유적으로 평가받으며, 피양 지역에는 사원과 성채, 불탑 등이 함께 남아 있어 구게 왕조(古格王朝, Gugé Kingdom)의 찬란했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피양은 둥가보다 규모가 크고 구게 왕조의 문화와 종교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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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속으로: 번영과 쇠락의 길
약 700년 전, 둥가-피양 지역은 구게 왕조의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마치 명나라 시기 베이징이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로, 난징이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것처럼, 이곳 또한 번영의 시기를 누렸습니다.
왕족, 관리, 승려, 상인들이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던 이곳은 구게 왕조의 쇠퇴와 함께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기억은 석굴의 벽화와 유적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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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발견: 사라진 문명의 흔적
한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했던 구게 왕조의 중심지. 하지만 현재 자다현의 인구는 5,000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수도 자부랑(扎布让, Zhābùràng)에 위치한 동굴군은 최대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나, 이를 초과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수도 주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했고, 1992년 대규모 탐사를 통해 둥가-피양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발굴자’가 학자들이 아닌 현지 주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석굴에서 불상과 귀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도굴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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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가-피양의 웅장한 석굴군
둥가-피양 유적은 티벳에서 발견된 가장 큰 석굴군 중 하나로, 자다 분지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둥가 석굴군은 약 200여 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피양 석굴군은 ‘전산 1,000개, 후산 1,000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광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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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석굴 유형과 용도
석굴 내부는 단순한 예불 공간을 넘어, 거주지, 저장고, 왕족의 궁전, 사원, 요새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창문과 화덕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굴도 있어, 과거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험준한 지형 속 석굴은 외부 침입을 방어하는 거점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주요 석굴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불굴(礼佛窟): 중앙에 불상을 모시고 승려와 신도들이 예불을 드리는 공간입니다.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정교한 벽화가 특징이며, 이는 당시 불교 예술과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됩니다. 벽화에는 다양한 색채와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불상과 보살상이 자리하며, 불교의 세계관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승방굴(僧房窟):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을 하던 공간입니다. 석굴 내부에는 단순한 침상과 명상을 위한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일부 승방굴에는 수행에 필요한 불경과 경전이 보관된 흔적도 발견됩니다.
–창고굴(仓库窟): 사원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보관하던 공간입니다. 곡물, 승복,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들이 이곳에 저장되었으며, 안정적인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지하 석굴 구조가 특징입니다.
– 영탑굴(灵塔窟): 고승들의 사리를 보관하던 공간으로, 신성한 의미를 가진 석굴입니다. 내부에는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 자리하며, 벽면에는 공덕을 기리기 위한 불교 경전 문구와 명상에 집중하기 위한 상징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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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미술의 정수
둥가-피양 석굴에는 티벳 불교 예술의 정수를 담은 벽화와 조각들이 남아 있습니다. 주요 벽화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 불상 및 보살상
–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존격
– 고승과 조사들의 초상화
– 수호신과 금강역사 형상
– 불전 이야기 및 설법 장면
– 밀교 만다라
– 정교한 장식 문양과 불교 상징
강렬한 색감과 섬세한 붓 터치가 특징인 벽화들은 인도, 네팔, 티벳 불교 미술이 융합된 독특한 양식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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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보존 노력과 미래
자다현에서 차량으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둥가-피양. 한때 찬란했던 문명이 숨 쉬던 이곳은 이제 바람만이 지나가는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중국과 티벳 지역의 고고학자들은 석굴의 구조, 벽화의 안료 성분 등을 연구하며 복원과 보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침식과 극한 기후 조건으로 인해 벽화의 손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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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둥가-피양 석굴 유적은 티벳 불교 예술과 구게 왕조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이곳은, 연구와 보존이 시급한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탐사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가 밝혀질 것이며, 이 유적이 간직한 신비로운 역사적 가치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