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싸에서의 아침
해발 3,600m, 라싸의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든다.
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며 서서히 몸을 깨운다.
어젯밤, 고산반응을 몸소 경험했다.
강한 두통과 뒤척임 속에서 잠을 설치며 몇 번이고 깨어났다.
객실에 배치된 산소 발생기가 없었다면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푹 잔 것 같지 않지만, 어느덧 침대에 누워 있던 시간은 10시간이 다 되어간다.
라싸에서는 베이징 표준시간과 실제 체감 시간이 다르게 작용한다.
일출 시간이 08:00이라 해도, 실제로는 06:00의 여명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라싸의 아침은 깊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호텔 창가로 스며드는 빛은 흐릿하고, 거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하다.
예상보다 낮은 기온.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천천히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현명하다.
옷차림도 중요하다.
한낮이 되면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지만, 아침과 저녁의 공기는 매섭게 차갑다.
가벼운 레이어드 복장이 필요하다.
첫걸음, 이방인의 실감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문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든다.
티베트의 공기는 맑고 가볍지만,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있다.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이곳의 공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껴본다.
처음으로 라싸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밀려온다.
창밖을 내다보면 아직 조용한 거리.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하루를 맞이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상점 주인은 문을 열고, 순례자들은 벌써 길을 나선다.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염불 소리, 바람을 타고 퍼지는 향 냄새.
이곳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길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길 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오래된 돌바닥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기도와 엎드림으로 닳아 반질반질하다.
이곳에 쌓인 기도와 신앙의 세월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곳곳에서 만나는 티베트인들은 한 손에 염주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요한 신앙의 빛이 서려 있다.
라싸의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이곳 사람들은 그들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서두르지 않는다.
공기마저도 그러하다.
오늘의 일정도 그 흐름에 맡겨보려 한다.
조캉사원 – 천 년의 숨결이 깃든 성지
오늘의 첫 방문지는 라싸의 심장부, 조캉사원(大昭寺).
티베트 불교의 신앙이 집약된 이곳은 바코르 거리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수천 년 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기도 소리는 이곳을 가득 채웠다.
조캉사원의 역사는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이곳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조캉(大昭)’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워불상이 머무는 곳’을 의미하며, 곧 티베트 불교의 중심을 상징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거대한 호수였다.
티베트의 왕 송첸감포는 호수 위에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땅을 메우고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중심이 되었고,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조캉사원의 건축은 티베트, 네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식을 띠고 있다.
사원의 중앙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안치된 본전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작은 예배실과 승려들의 수행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벽과 천장에는 정교한 불교 벽화와 조각들이 새겨져 있으며, 모든 공간이 신앙의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정문을 지나면, 촛불과 향이 가득한 긴 회랑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순례자들이 기도하며 돌리는 마니차(기도 바퀴)가 길게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바퀴를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읊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순례자들은 바퀴를 돌리며 염송을 외우고, 자신들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한다.
사원의 앞 마당에서는 순례자들이 절을 반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 순례자들은 먼 곳에서부터 걸어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몸을 던지듯 절을 한다.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신앙과 간절함이 담겨 있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면 강한 향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향초들이 수백 개씩 타오르고, 벽에는 오래된 불교 그림들이 남아 있다.
그림들은 시간이 흐르며 바래졌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사원을 가로지르며 걷는 승려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읊조린다.
기도의 공간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 앞 마당을 내려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역사적인 장소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신앙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에게 다가간다.
어떤 이는 조용히 기도하고, 어떤 이는 촛불을 밝히며 소원을 빈다.
모두가 같은 신앙의 길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오로지 기도와 경건함만이 사원을 가득 채운다.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중심이자,수천 년 동안 변함없는 신앙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저 바라보고, 그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그 순간,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기도가 되는 듯하다.
바코르 거리
조캉사원을 나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바코르 거리(八角街).
이곳은 단순한 시장 거리가 아니다.
작은 사찰과 불교 신앙의 흔적들이 곳곳에 모여 있으며, 순례자들에게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조캉사원을 참배한 후, 순례자들은 자연스럽게 바코르 거리로 향한다.
이곳에서 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라(Kora)’ 의식을 행한다.
이는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신앙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행위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며 기도하고, 어떤 이는 염주를 쥐고 조용히 걷는다.
바코르 거리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골목마다 숨겨진 작은 사찰들이 있으며, 그 안에서는 염불이 울려 퍼지고 있다.
각 사찰마다 고유한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향을 피운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작은 노점에서는 다양한 전통 불교 공예품을 판매한다.
기도 바퀴, 탕카(불교 회화), 손으로 조각한 염주와 불상 등은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작품들이다.
바코르 거리에서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신앙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들을 접할 수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기도를 올리는 승려들뿐만 아니라,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 거리에서 보내며, 조캉사원과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바코르 거리는 티베트 불교의 살아 있는 역사와도 같다.
조캉사원에서 이어지는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이곳의 공기와 사람들 속에서 깊은 신앙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시간을 초월한 경험,
오랜 신앙이 깃든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걷고 있다.
세라사원 – 불교 철학이 살아 숨 쉬는 곳
바코르 거리에서 북쪽으로 30분 거리.
주차장 도착 후 언덕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눈앞에 세라사원(色拉寺) 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5,0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수행하던 이곳.
지금도 바람이 부는 오후마다, 이곳의 공기는 토론으로 뜨거워진다.
붉은 벽, 금빛 지붕, 그 안에서 흐르는 낮은 목소리들.
여기서는 신앙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쌓인다.
논쟁 속에서 피어나는 신앙
사원의 마당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오후 3시가 되면 마당이 점점 북적이기 시작한다. 변경(辩经)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바람이 사원의 담장을 넘어 마당을 가로지른다. 바닥을 박차고 울리는 손뼉 소리가 공기를 흔든다.
세라사원의 변경은 단순한 토론이 아니다.
불교 철학을 깨닫기 위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승려들은 두 명씩 마주 앉아 서로에게 묻는다. 질문을 던지는 자는 손뼉을 치며 말을 내던지고, 상대는 그 말들을 주워 반박하거나 해석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문장을 곱씹으며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이 흐른다.
질문자는 다시 손을 크게 내리친다.
바닥에 닿는 소리는 무거운 질문처럼 울린다.
“삶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깊은 대답이 되고, 때로는 한 마디의 반문이 긴 설명을 가로막는다.
토론은 끝없는 계단과 같아서, 한 단을 오르면 또 다른 단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논쟁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며 모든 것은 사원의 돌바닥에 스며든다.
믿음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며 더 깊어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승려들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원을 넘어 흐른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고, 때로는 길게 침묵이 흐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 누구도 노여워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논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진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변경이 열리는 광장을 지나면, 세라사원의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벽을 따라 걷다 보면, 기도와 시간이 겹겹이 쌓여 내려앉은 하얀 벽이 길을 안내한다.
먼지 한 겹이 마치 세월처럼 벽돌 사이를 채우고,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오래전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발걸음이 조용해진다.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춰 선다. 반쯤 열린 나무문이 오랜 세월을 품은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낮은 천장 아래 흔들리는 촛불, 그리고 그 빛에 드리운 그림자들. 벽에는 손때 묻은 경전이 층층이 쌓여 있고, 책장마다 수많은 손길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말이 필요 없는 공간.
향 냄새가 배어 있는 공기 속에서, 한 승려가 불상 앞에 앉아 염주를 굴린다.
조용히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맞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사이, 이곳의 공기와 하나가 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좁고 긴 복도같은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얀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황금빛 지붕이 반짝인다.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르지만, 이 공간에서는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듯하다.
벽을 따라 손끝을 스치듯 걸으면, 오래전 기도의 흔적이 벽에 스며 흐른다. 바람이 불어오고, 기도는 아직도 벽 어딘가에 남아 있다.
어쩌면, 이곳은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걸음을 내딛으며, 남겨진 기도와 현재의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을 느낀다.
그 속에서 바람이 흐르고,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천장터로 남겨진 뒷산
세라사원의 뒷산은 장터(天葬台)로 운영되던 곳이다.
티베트의 하늘장(天葬) 풍습이 이어졌던 장소, 생을 마친 자들이 하늘과 하나가 되는 곳.
그러나 지금은 외부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산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진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속에서, 산은 여전히 하늘과 맞닿아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스친다.
바람이 그 소리를 머금고 지나간다. 기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곳에 머물고, 이곳을 떠나는 모두의 발걸음에 남겨진다.
멀리 보이는 바위 위에는 작은 천 깃발들이 나부낀다.
색이 바래고 낡아 있지만, 여전히 바람을 머금은 채 흔들리고 있다.
그곳에 걸린 기도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남겨진 것들은 바람과 함께 흩어질 뿐.
오늘 하루…
왔던 길을 되돌아 주차장으로 내려오며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새긴다.
이날 아침, 조캉사원에서 시작된 하루는 바코르 거리를 지나 세라사원으로 이어졌다.
조캉사원에서는 기도의 손길이 닿은 나무 문짝과, 그 앞에서 수없이 엎드리며 기도하는 순례자들을 마주했다.
그들의 손끝이 닿은 자리마다 세월이 흘렀고, 기도는 나무에 스며들어 있었다.
바코르 거리에서는 손에 염주를 쥐고 조용히 걷는 사람들,
가만히 서서 바람에 기도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길 위에서, 이곳 사람들의 믿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배웠다.
세라사원에서 마주한 것은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기도가 아닌, 논쟁을 통해 신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
그들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고민과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곳에서 신앙은 가만히 앉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서 자란다.
승려들은 손뼉을 치며, 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침묵이 답이 되고, 때로는 한 마디의 반문이 긴 설명을 대신한다.
논쟁은 격렬하지만, 그 속에서 누구도 화를 내지 않는다.
여기서 논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녁, 하루를 마감하며
세라사원을 나서며 바람을 깊이 들이마신다.
해가 기울고, 사원의 벽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당에서 들리던 손뼉 소리는 사라지고, 이제는 조용한 대화와 발소리만이 남았다.
거리를 따라 걷다, 가이드의 안내로 저녁 식당으로 향한다.
라싸의 저녁 공기는 낮보다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하루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
버터차, 독특한 향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움.
한 모금 마시며, 몸을 녹인다.
한 그릇의 국수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따뜻한 국물을 한입 머금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거리에는 순례자들이 여전히 발길을 옮기고 있다.
어딘가로 향하는 걸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찾았을까?
그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모든 길은 어디론가 이어진다.
그리고 내일도, 나는 또다시 길 위에 설 것이다.
라싸의 바람이 여전히 내 등을 떠밀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