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모랑마 관제묘의 역사
초모랑마 관제묘(珠穆朗玛关帝庙)의 전신은 강가 관제묘(岗嘎关帝庙)로, 청 건륭(乾隆) 59년(1794년)에 처음 건립되었습니다.
2014년 5월에 재건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이 사찰은 초모랑마봉(珠穆朗玛峰, 에베레스트)과 서로 응답하듯 우뚝 솟아 있는 강가산(岗嘎山) 정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가산의 위치와 중요성
강가산의 해발고도는 4398미터이고, 대전(大殿)의 높이는 33미터이며, 전체 고도는 443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제묘입니다.
역사적 배경
《정일현지(定日县志)》에 따르면, 청 건륭 59년(1794년)에 정일현 강가산에 한족(漢族) 양식의 전쟁의 신 관우의 ‘관제묘’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청 건륭 53년부터 57년(1788년부터 1792년)까지 청나라와 티벳 연합군이 함께 궈얼카(廓尔喀)(현 네팔)의 티벳 침공을 반격한 역사를 충실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기록
청 건륭 연간에 궈얼카(廓尔喀)군이 티벳로부터 세폐를 요구했으나 실패하자, 라싸가 약속을 어겼다는 구실로 티벳를 침략했습니다.
그들은 네랄무(聂拉木), 정일(定日), 사가(萨迦), 지룽(济咙), 시가체(日喀则)를 차례로 점령하고 자샤룬부 사원을 약탈하여 티벳 전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건륭 황제는 대장군 복강안(福康安)을 파견하여 한족, 티벳족, 만주족 등 여러 민족의 병사들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궈얼카(廓尔喀)의 침략에 맞섰습니다.
관제묘 건립의 이유
청-티벳 연합군은 티벳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7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고,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침략자를 국경 밖으로 몰아낸 뒤 네팔의 수도까지 진격했습니다.
결국 네팔 국왕은 항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은 당시 험난한 지리적 환경과 자연 기후 속에서 용맹으로 유명한 네팔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무신(武神) 관우(关羽)의 은덕 덕분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장군 복강안이 주관하여 모든 관병이 은을 기부해 강가 관제묘를 건립했습니다.
초모랑마 관제묘의 독특한 위치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제묘는 높은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치가 네팔, 부탄, 인도 등 나라와 접해 있어, 현지 티벳인들 사이에서는 ‘한 사찰에서 네 나라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일묘망사국(一庙望四国)’의 신묘로 불리고 있습니다.
촬영 안내
찾기 쉬움: 관제묘는 높은 강가산 위에 지어져 있어 강가진 경계에 들어서면 바로 보입니다.
접근성: 세계 해발 최고 관제묘에서 주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현재 차량으로 산 정상까지 갈 수 있으며, 입장료는 한 차량당 20위안입니다. 하지만, 관제묘 문은 항상 닫혀 있고, 관리자가 없어 현재는 관광객에게 개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 아래에 관광 센터가 건설 중이며, 미래에는 입장료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드론 사용 주의: 산 꼭대기에서 드론을 사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비행 금지 표지가 있으며, 이유는 산 아래에 군사 시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람 포인트: 묘 동남쪽에는 큰 목조 전망대가 있어 망원 렌즈를 사용하면 세계 여섯 번째 높은 봉우리인 초오유봉(卓奥友峰)과 초모랑마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