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다.
랑카즈, 변화의 길목
얌드록초를 지나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랑카즈.
이곳은 산남 지역과 시가체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도시지만, 행정구역상 산남 지역에 속한다.
한때 가난한 목축업 마을이었던 이곳은 최근 관광 산업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열리는 사이클링 챌린지가 개최되면서, 이 작은 마을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게 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가이드가 안내한 식당은 관광객을 위한 곳이었지만, 예상보다 음식이 훌륭했다.
신선한 채소와 고기가 조화를 이루며, 티베트 고유의 풍미가 스며든 요리들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해발 4,470m에서 즐기는 식사는, 평소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카뤄라 빙천, 얼어붙은 시간
랑카즈에서 차로 30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 해발 5,020m, 카뤄라 빙천.
차에서 내리자마자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산병의 기운이 서서히 다시 밀려왔다.
그러나 눈앞의 풍경은 숨이 멎을 듯한 장관이었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산을 감싸고, 눈 덮인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가이드는 말했다.
“굳이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됐다.
자연의 웅장함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때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고, 그 순간, 나는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장체, 영웅의 도시
빙천을 지나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체현.
티베트 고원의 풍요로운 땅 중 하나이자, 과거 무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영국-인도군이 침입했을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
절벽 위에서 끝까지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항복 대신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지금은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충혼탑 앞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들의 희생이, 이 고원의 바람 속에서 영원히 흐르고 있는 듯했다.
펠코르 최데 사원, 백거탑의 신비
장체현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펠코르 최데 사원.
이곳은 1418년에 세워진 라마 사원으로, 티베트 불교의 여러 교파가 공존했던 곳이다.
사원의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불상과 화려한 벽화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백거탑.
‘십만탑‘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탑은, 무려 10만 개의 불상이 모셔진 신성한 공간이었다.
탑의 상부에는 부처의 눈이 네 방향으로 그려져 있었고, 이는 네팔식 스투파를 떠올리게 했다.
사원의 복잡한 구조와 섬세한 조각들은 티베트 불교의 다양한 전통이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백거탑 앞에 서서, 그 안에 담긴 오랜 시간과 신앙의 무게를 느꼈다.
장체에서 시가체로, 바람이 흐르는 길
장체에서 시가체로 가는 길.
티베트 고원의 거친 숨결 속에서도, 이 길은 유난히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커브 없이 뻗어 있는 도로.
보리밭과 밀밭, 감자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티베트의 땅은 척박하다지만, 그곳에서 싹을 틔운 곡식들은 강인했다.
황토와 돌이 섞인 산들.
거칠지만 웅장한 모습으로 길을 따라 서 있다.
그 사이를 지나며 바람은 길을 따라 흐른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곳곳에서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가이드는 말했다.
“이곳의 기후는 낮은 기온과 강한 자외선이 특징이라 농작물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닐하우스 덕분에 채소를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 오이, 고추들은 티베트 사람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비닐하우스도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생명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시간 반을 달려 시가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가체 도착
마침내 시가체에 도착했다.
티베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하지만 높은 빌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장엄한 타쉬룬포 사원이었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눈을 감는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티베트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야롱장푸강의 흐름, 얌드록초의 푸른 심장, 카뤄라 빙천의 얼어붙은 세월, 장체현의 저항과 희생.
이곳까지 오면서, 티베트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깊은 이야기가 깃든 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를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