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산, 카일라쉬
해발 6,656m에 우뚝 솟은 카일라쉬 산(冈仁波齐, Mt. Kailash)은 티벳에서 가장 신성한 산으로, 힌두교, 티벳 불교, 본교 등 여러 종교에서 ‘세계의 중심’이라 불립니다.
대칭에 가까운 원뿔형의 산체는 마치 거대한 부처상이 하늘 아래 앉아 있는 듯한 신비로운 형상을 자아냅니다.
석양이 질 무렵, 산 정상에 드리워지는 금빛과 은빛의 경계는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장식과도 같습니다. 이 신성한 풍경은 수많은 순례자와 탐험가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티벳 불교에서는 카일라쉬 산을 한 바퀴 도는 ‘코라’를 수행하면 전생과 현생의 업장이 씻기고 해탈의 길에 가까워진다고 믿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은 깊은 숨을 내쉬며 이 신성한 여정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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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순례길 속 숨은 보석, 지러쓰
카일라쉬 산 깊은 산속, 고요한 언덕 위에 자리한 지러쓰(芝热寺, Zhira Monastery, 디라푹 사원,Dirapuk Monastery). 해발 5,085m에 위치한 이 사원은 카일라쉬 산 북벽을 조망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며,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보급지이자 휴식처가 됩니다.
티벳어로 ‘지러궁바(芝热贡巴)’, 즉 ‘어미 야크의 뿔’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러쓰는 마치 자연과 조화를 이루듯 웅장한 산세에 녹아 있습니다.
사원의 입구에는 돌사자가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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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지러쓰는 전통적인 티벳 건축 양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과 화려한 창문, 황금빛 지붕이 조화를 이루며 깊은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사원의 3층 옥상에는 넓은 플랫폼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카일라쉬 산의 전경은 그야말로 경이롭습니다.
중앙에는 티벳 불교의 상징인 ‘금빛 사슴과 법륜’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의미합니다. 옆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경전을 읊는 듯 회전하는 기도룡(转经筒)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전(大殿) 내부로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다름 아닌 카일라쉬 산.
기도를 올리는 이들은 고개를 들 때마다 신성한 산을 마주하며 깊은 경외심에 젖어듭니다.
어쩌면 이 사원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카일라쉬 산 자체를 신앙의 중심으로 품고자 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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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지혜가 머무는 곳
사원의 서쪽, 카일라쉬 산을 향한 언덕에는 수십 개의 하얀 불탑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밤낮으로 순례자들은 산을 향한 기도를 올립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사원 전체가 카일라쉬 산을 경배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대전의 한쪽 문을 지나면 ‘장경각(藏经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보존된 고서적과 경전들이 빛이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장경각을 지나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수행과 학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독서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러쓰 바깥, 사원의 건물 곳곳에는 소머리, 영양 뿔, 늑대머리 등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티벳 불교의 철학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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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신비, 그리고 평온한 순간
사원에는 한 가족이 예불을 드리고 내려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티벳에서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존재 그 자체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사원의 황금빛 지붕이 석양에 물듭니다. 한 어린 승려가 플랫폼 위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선한 미소가 번져 있으며, 그 순간은 평온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카일라쉬 산은 언제나 신비롭고 숭고합니다. 어쩌면, 수많은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았을 카일라쉬 산은 오늘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세상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