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에 사원으로 가는 길
라싸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해가 떠오르면서 공기가 서서히 따뜻해졌고,
거리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산남 지역으로 향하는 날이다.
첫 번째 목적지: 사미에 사원
티베트 역사상 최초의 불교 사원이자,
오랜 세월 동안 신앙의 중심이 되어온 사미에 사원(桑耶寺).
차에 올라 라싸를 출발하며 도시는 점점 멀어지고,
창밖 풍경은 변해갔다.
야루짱부강(雅鲁藏布江)이 유유히 흐르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공항 방향의 고속도로를 따라 약 40분,
야루짱부강 다리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한 후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리니 사미에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싸에서 약 1시간 40분 걸리는 이 여정은
길을 따라 이어지는 흔적들 모두가 신앙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사미에 사원: 불교의 시작점
사미에 사원은 티베트 산남지구 자낭현(扎囊县),
야루짱부강 근처 하부르산(哈不日山)의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티베트 최초의 승려들이 출가한 이곳은 수백 년 동안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
불상과 불경을 모시고,
승려들이 기도와 수행에 전념했던 이 땅은
불교의 씨앗이 티베트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특히 사미에 사원은 티베트 최초의 법당으로 여겨진다.
법당은 불교 신앙을 중심으로 기도와 수행을 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그 형태와 구조가 만다라(曼荼罗)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만다라는 불교에서 우주와 세계를 상징하는 도형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침이 된다.
사미에 사원은 이러한 만다라의 원리를 바탕으로
중앙에 거대한 대전을 두고,
사방에 불전과 작은 법당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사원에 들어선 순간,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기도의 무게와 성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미에 사원의 창립자는 바로 파드마삼바바(莲花生, 연화생)입니다.
그는 티벳 불교의 중요한 인물로,
불교를 티벳에 처음 전파한 스승 중 하나로 알려져 있죠.
파드마삼바바는 이곳을 ‘불교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한때 많은 전투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사원을 건설했습니다.”
가이드의 말은 차분하고도 깊은 울림을 담고 있었다.
“파드마삼바바는 또한 그의 생애 동안 많은 기적을 일으킨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이 사원은 그가 티벳에 불교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한 증거로,
그의 정신이 아직도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곳곳에 세겨진 수많은 역사적 흔적들이
그곳의 영혼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
내가 느낀 것은 단순히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곳에서, 불교의 깊은 철학과 파드마삼바바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노력과 고뇌가 사원의 돌과 벽, 그리고 바람 속에 묻혀 있었다.
사미에 사원의 정수는 단순히 물리적인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담긴 시간과 인내, 그리고 신앙에 있었다.
그 기운은 머무는 모든 이에게 조용히 스며들며,
이곳을 떠날 때에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면,
파드마삼바바가 이곳에 불교의 불꽃을 남긴 그 순간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나에게도 작은 영감을 주었다.
사미에 사원은 그저 하나의 목적지라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 장소였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그 깊이와 신령함이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사미에 사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스러운 세계였다.
사미에 사원을 떠나 산남시(山南市)로 향했다.
차로 약 40분,
티베트 남부의 중심지이자 역사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곳이다.
과거 이곳은 야롱(雅砻)이라 불리며,
티베트 문명의 발상지로
불교 문화가 태동한 장소였다.
산남시는 해발 약 3,000m.
티베트 고원의 품속에서, 라싸보다 600m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라싸가 숨을 고르게 만들고,
머릿속에 고요와 울림을 동시에 던져주는 곳이라면,
산남시는 그보다 한결 여유롭다.
높은 곳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고도.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고,
시야 끝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탁 트인 자유를 준다.
라싸의 분주함과 활기가 큰 강물처럼 흐른다면,
산남시는 산골짜기를 따라 잔잔히 흐르는 시내처럼 잔잔하다.
몸은 가볍고, 마음은 더 가볍다.
이곳에서는 발걸음도,
생각도,
조금 더 느긋해진다.
야루짱부강(雅鲁藏布江)을 건너
산남시의 중심거리인 체탕진(泽当镇)에 도착한
우리는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는 신선한 재료와 소박한 조리법으로 티베트의 전통을 느끼게 해주었고,
따뜻한 환대가 곁들여졌다.
식사를 마친 후, 잠시 휴식 삼아 식당 주변을 걸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시골 도시 같지만,
산남시로 승격된 도시답게 변화의 속도가 느껴졌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거리엔
3층, 4층짜리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높은 빌딩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이 티베트 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신력광장,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신력광장이란 대형 쇼핑몰이 눈앞에 보였다.
가이드는 이곳을 산남시에서 현대적인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했다.
광장의 1층에는 맥도널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익숙한 진열대와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도시의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산남.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는 도시.
장엄한 산과 강, 고요히 흐르는 전통문화 속에서
‘수행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 거대한 현대 상업 건물이 들어섰다.
아이러니한 풍경이었다.
유리 외벽과 반짝이는 간판들.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산남은 무엇을 선택한 걸까.
아니, 이 도시는
선택 대신 공존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수행 중이라 하더라도
현대화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수행은,
그 편리함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 아닐까.
신력광장 앞에 서서
나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산남의 풍경을 바라본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이 도시는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신력광장 안, 맥도널드에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샀다.
한 모금 맛을 보니,
목으로 넘어가는 시원함과 함께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직 수행이 덜 되었나 보다.
이 작은 해갈의 순간에 이렇게나 만족하다니.
잔을 비우고,
차에 올랐다.
커피의 여운이,
내게 묘한 평온을 남겨주었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는 융부라캉의 역사와 전설을 들려주었다.
“융부라캉은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 중 하나입니다.”
차 안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곳은 산 위에 자리 잡아,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이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죠.
또한 티베트 최초의 궁전이자 민족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이드는 또 전설도 들려주었다.
“어느 날, 야룽 계곡에서 주민들이 낯선 젊은이를 발견했는데,
그는 주민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존재로 믿고,
티베트 최초의 왕, 녜치잔푸로 추대했죠.”
녜치잔푸는 어린 시절 가족에게 버림받았지만,
야룽 계곡에 정착해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고,
사회 질서를 세우며 왕국을 건설했다.
그의 업적은 농경 문화를 정착시키고,
번교를 숭상하며 융부라캉을 세운 데까지 이르렀다.
가이드는 전설과 역사를 넘나들며 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융부라캉, 티베트의 숨결을 품은 궁전
시내로 부터 20분 정도 이동하니
융부라캉에 도착했다.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장엄한 궁전과 눈앞의 풍경이 오묘하게 겹쳤다.
사진 속에서 본 그것은 드넓은 농지 가운데 우뚝 서 있었지만,
실제 융부라캉은 언덕 위 작은 건축물로 담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주차한 후,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길은 크지도 가파르지도 않았지만,
그곳을 향한 발걸음마다 이 땅의 숨결과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듯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기도 깃발 사이로,
순례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빛엔 믿음이 담겨 있었고,
그들이 걷는 길은 단순한 오르막이 아니라
삶의 궤적처럼 보였다.
궁전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강해졌고,
그 바람은 이곳에 새겨진 세월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궁전 앞에 서자,
그곳은 크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티베트의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는 듯한 작은 공간.
바람에 나부끼는 기도 깃발들과,
멀리 흐르는 야루짱부강의 모습이
하나의 풍경처럼 내 시선을 붙잡았다.
궁전 내부는 신성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기도에 몰두하는 순례자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경전 소리.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티베트의 숨결과 역사가 살아 있는 공간임을 느끼게 했다.
창주사, 신성한 기운이 흐르는 고요한 사찰
창주사에 도착한 순간,
무언가 특별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이곳으로 향했다.
송잔간부 대왕이 세운 고대의 사찰,
티베트 불교의 첫 불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문성공주가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고원의 정수를 깨달았다고 한다.
가이드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창주(昌珠)’라는 이름은 티베트어로 독수리와 용을 의미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주역과 천문에 능했던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오행을 운용하여 천문과 지리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티베트 전역의 지형이 나찰마녀(羅刹女)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죠.
이 지형은 티베트 왕조에 매우 불리한 형세를 나타내고 있었기에,
문성공주는 나찰마녀의 심장과 팔,
다리에 사원을 건설해 그 힘을 누르고자 했습니다.
결국,
나찰녀의 왼쪽 어깨에 해당하는 곳에 창주사를 세우게 된 것이죠.”
가이드의 목소리가 깊어졌다.
“그래서 이 창주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티베트의 지형을 정화하고 그 힘을 다스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입니다.”
창주사는 단순한 전설 속의 장소가 아니다.
고난을 겪으며, 많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러 차례의 파괴와 재건을 겪었기에
현재의 건축물은 대체로 지난 세기 중에 재건된 것이지만,
사원의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중대하다
새로 세운 건물일지라도,
그 뿌리는 고요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대전에 들어서면, 주존이 있다.
‘파드마삼바바(莲花生, 연화생)’을 모신 곳,
고원의 기운을 담은 듯한 신령한 기운이 가득한 공간.
바람이 불 때마다,
그 기운은 더 깊어졌다.
나는 그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었다.
이곳에는 단순한 ‘사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전 2층에 있는 ‘진주 관음 탕카’.
왕실에서 제작된 유물로,
2미터가 넘고 2만 개가 넘는 진주가 박혀 있다.
관음보살의 모습은 고원의 숨결을 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벽을 채운 ‘명나라 케시 탕카’.
‘일중 금오’, ‘월중 옥토끼’.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세월을 견뎌냈다.
이곳에서,
나는 고대 티베트의 영혼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어쩐지 내 안에 스며들었다.
창주사는 단지 여행지가 아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특별한 장소였다.
발걸음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여행은 발걸음이 닿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는 것을.
창주사는 내부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으로는 그 모습을 남길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곳의 모든 것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진이 아닌,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그 풍경과 분위기는
다른 사찰들보다 창주사를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장소로 만들었다.
산남에서 라싸로: 여운을 남긴 여행의 끝자락
체탕과 산남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우리는 라싸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저녁이 다가오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뒤로한 채
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의 시간은 점점 느리게 흘러갔다.
앞으로 펼쳐질 라싸의 거리 풍경,
그곳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떠올리며
우리는 여전히 지난 하루를 되새기고 있었다.
융부라캉에서 느꼈던 신성한 기운,
순례자들의 눈빛 속에 담긴 믿음,
바람에 흔들리던 기도 깃발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장소를 넘어서,
내 안 깊숙이 새겨졌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믿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특별한 공간은 잊을 수 없다.
차는 계속해서 라싸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마을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흩어지는 마지막 햇살들이 나를 다시 사유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 모든 기억을 안고,
라싸로 돌아오는 길을 탔다.
산남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차분한 공기는
아직 내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차가 라싸에 가까워질수록,
이 여행이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라싸의 거리, 사람들의 얼굴,
그곳의 공기까지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라싸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산남의 풍경은
여행의 끝자락을 알리는 듯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
마주한 사람들, 나눈 소소한 대화들이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산남에서의 모든 순간은 고요하고 신성한 느낌으로 내 안에 남아,
라싸로 돌아가는 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