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몽골의 등장
12세기에 들어서,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가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휩싸이게 됩니다.
북방 초원에서 살던 몽골족이 중국은 물론 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개 부족장이었던 테무진이 여러 유목 민족을 통일하고, 1206년 몽골 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그는 1대 황제 징기스 칸이 됩니다.
징기스 칸의 정복
징기스 칸은 몽골 초원에서 세력을 키우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당시 주변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金), 거란족이 세운 요(辽),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 티벳(西藏)의 토번(吐蕃), 한족이 세운 남송(南宋) 등 다섯 개의 주요 국가가 있었습니다.
징기스 칸은 이 국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금나라와 요나라를, 이후 서하(西夏)를 정복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오고타이 한과 티벳
징기스 칸을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 오고타이 한(窝阔台 汗)은 서하(西夏) 정복시 군대를 이끌고 공격한 아들 쿠텐(阔端)을 서하왕으로 봉하였습니다.
오고타이 한은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티벳을 정벌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1239년, 오고타이 한은 아들 쿠텐에게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티벳을 점령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쿠텐은 양주(凉州) 지역에 본부를 설치하고, 탕구트족 출신 장군 타르칸에게 선발대를 이끌게 했습니다.
티벳의 정복과 저항
쿠텐의 선발대는 암도 지역을 점령하여 티벳 동부를 영향력 하에 두었고, 1240년 그의 군대는 계속해서 진격하여 티벳 중부 지방까지 점령하며 라싸(拉萨) 턱밑까지 진격해 갔습니다.
몽골군대는 그 동안 싸웠던 다른 민족에 비해 쉽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군대가 쳐들어오자 대부분 사원의 승려나 신자였기에 비폭력을 우선시 하였으므로 쉽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군대는 징기스 칸 때부터 정벌시 무차별하게 살육을 했기에, 티벳에서도 비폭력의 백성들과 승려들 역시 무차별하게 죽였고, 사원들을 불태우고 약탈해 갔습니다.
몽골과 티벳의 평화 회담
몽골군의 잔혹함은 전 티벳에 반항을 일으켰고, 점점 격렬하게 맞서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라싸쪽으로 진격할수록 해발이 높아지면서 산소가 부족하여 고산 반응에 군사들은 힘들어하게 됩니다.
1241년 겨울, 아버지 오고타이 한이 세상을 뜨자 쿠텐은 선발대를 남겨두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때 전방에 있던 장군이 쿠텐에게 싸우지 말고 협상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쿠텐은 티벳 정부에 가장 법력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법사를 보내라고 통보했습니다.
티벳 불교의 지도자 샤가 빤디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몽골인들의 살상을 두려워해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샤가파의 샤가 빤디따(萨迦·班智达)가 자진해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어린 조카인 팍빠 파스파·뤄주이졘짠(八思巴·洛追坚赞)을 동반하여 쿠텐의 궁궐로 출발하였고, 2년 후 도착하여 쿠텐을 만났습니다. 샤가 빤디따는 쿠텐을 치료하여 좋은 인상을 남기고, 쿠텐은 티벳 불교로 개종하고 샤가 빤디따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몽골과 티벳의 관계 설정
두 사람은 평화 회담 방식으로 몽골과 티벳의 관계를 해결했습니다.
티벳은 몽골에 항복하여 몽골의 티벳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하고,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에 몽골은 도살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 회담은 양주(凉州)에서 이루어졌기에 양주회맹(凉州会盟)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샤가 빤디따의 영향
샤가 빤디따는 회담이 끝난 후에도 양주에 남아 티벳 불교를 전파하였고, 많은 몽골의 왕족과 귀족들이 티벳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몽골의 고위층과 왕래하며 불교를 전파하는 한편, 조카 팍빠의 교육에도 전념하였습니다.
파스파와 쿠빌라이 칸
1251년 샤가 빤디따가 죽고, 그의 조카 팍빠 파스파가 샤가파의 최고위 종교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파스파는 쿠빌라이 칸(忽必烈)의 초청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고, 불교와 도교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며 몽골 제국 내에서 불교의 위치를 확립하였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파스파를 국사로 임명하고, 그에게 새로운 몽골 문자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파스파는 티벳 문자를 바탕으로 41개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홍보하였고, 이는 원나라의 공문서에 사용되었습니다.
파스파의 업적과 몽골-티벳 관계
파스파는 쿠빌라이 칸의 존경을 받아 티벳 불교의 위상을 확립하고, 티벳과 중원의 연결을 촉진하였습니다.
1280년 파스파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티벳과 몽골의 종교 및 정치적 관계는 청나라까지 이어졌습니다.
티벳은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티벳 불교를 국교로 정하여 몽골족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습니다.
티벳의 종교적 변천
1368년 원나라가 붕괴하면서 샤가파의 티벳에 대한 권력도 붕괴되기 시작하여, 티벳의 패권은 까규파 계열의 가쥐파로 넘어가 290년 가까이 티벳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몽골 제국과 티벳의 만남은 잔혹한 정복 전쟁에서 시작되었으나, 종교 지도자들의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종교와 정치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는 티벳과 몽골, 나아가 중국과 티벳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