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호텔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조식을 마쳤다.
창밖으로 보이는 라싸의 아침은 한적하면서도 고요했다.
새벽 공기가 차갑고 신선했다.
창문을 열면 먼 산맥 위로 서서히 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이 보였고,
포탈라궁을 향해 손을 모으는 모습이 평온하게 다가왔다.
오늘은 당일치기로 라싸에서 먼 곳에 있는 남초 호수를 다녀오는 날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 했기에,
차가운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호텔 문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도시,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호텔 문을 나서자, 이른 아침의 햇살이 부드럽게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하늘은 서서히 푸른빛을 더해가고,
포탈라궁의 붉은 벽은 태양을 받아 따뜻한 색을 띠었다.
길가에는 상점 주인들이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거리를 따라 천천히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상쾌한 공기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는 라싸의 아침이 펼쳐지고 있었다.
포탈라궁 광장 주변에는 벌써 많은 티베트인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포탈라궁을 지나자, 도시가 서서히 뒤로 멀어졌다.
라싸강을 따라 도로를 달리면 점차 도시의 불빛이 사라지고,
대신 끝없는 고원의 대지가 펼쳐진다.
밤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 푸른빛이 서서히 번져간다.
바람이 불어 창문을 스칠 때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끝없는 초원과 당슝의 땅
라싸를 떠나 남초를 향하는 길, 도로는 점점 구불구불해졌다.
라싸에서 당슝까지의 거리는 약 160km.
160km의 산길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 덕분에 우리는 무려 3~4시간이나 걸려야 했다.
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넓게 펼쳐진 초원,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맥,
그리고 길가를 따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와 양들.
도로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은 녹아내린 만년설의 흔적이었고,
공기는 점점 더 차갑고 묵직해졌다.
당슝으로 향하는 도로는 고도를 점차 높이며,
멀리 보이는 산맥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늘은 더욱 선명한 파란빛을 띄었다.
양떼와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타르초(经幡)가 바람에 나부낀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생명은 살아 숨 쉰다.
앞쪽으로는 구불구불 길게 뻗은 칭장 고속도로가
마치 검은 리본처럼 당슝의 굽이진 대지를 부드럽게 가로질렀다.
차량들은 굽이진 길을 따라 조용히 흘러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차창을 두드린다.
오가는 차량들과 간간이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는
이 끝없는 초원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야크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초원의 색은 태양빛을 받아 점점 더 깊어진다.
바람에 실려 온 먼지마저도 이 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신비로움과 경외심이 가득한 땅이다.
대자연의 장엄함과 원시적인 야성이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울렁이게 만든다.
우리는 그 한가운데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당슝현에서의 점심
당슝현에 도착하자, 우리는 잠시 차에서 내려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당슝(当雄)현.
티베트어로 ‘선택된 초원’이라는 뜻.
이곳은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땅이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지만, 마을 중심에는 몇 개의 작은 식당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현지식 위주의 음식이 제공되었고,
양고기 국수, 수제 버터차, 그리고 짭조롱한 야크 고기가 식탁에 올랐다.
식당 내부는 소박했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벽에는 티베트 전통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들이 보였다.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 몸을 덥혀주며,
차가운 고원 바람을 잊게 만들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우리는 다시 나근라(那根拉, 라첸라) 산맥을 향해 출발했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 후 남초 호수로 출발한다.
한참을 달려 남초 호수 국가공원 매표소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여권 검사와 티켓을 구매한 후 다시 차를 타고 남초 호수 풍경구까지 이동해야 한다.
매표소에서부터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는 남초 호수까지는 아직도 약 1시간 반 정도 더 이동해야 한다.
라근라 산맥을 넘어서
매표소에서 라근라 전망대까지는 20km, 차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로는 점점 험해지고,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차량의 속도도 느려졌다.
차가 오를수록 공기는 더욱 희박해지고, 숨이 가빠왔다.
바람은 차갑고, 태양빛은 강렬하다.
멀리 보이는 능선이 점점 가까워지며,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만년설이 햇살을 받아 빛났다.
길가에는 양과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작은 집들이 초원 위에 점처럼 놓여 있다.
고개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휴게소에 도착하자,
바람이 거칠게 불어왔다.
해발 5,190m.
나근라(那根拉) 고개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는 라싸보다 해발이 1,000m나 더 높은 곳이라, 심하게 움직이이시면 안 됩니다. ”
가이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산 위의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숨을 들이쉬고, 이곳이 내뿜는 고요를 온몸으로 느낀다.
이곳에 서면 남초 호수와 념칭탕구라(念青唐古拉) 산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끝없이 펼쳐진 설산과 호수는 눈부시게,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능선. 그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초원.
발아래에서 짧은 풀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멀리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서, 나도 잠시 멈춰 선다.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 기도 깃발
사방으로 펼쳐진 능선 위에는 끝없이 나부끼는 타르초(经幡)가 걸려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흰색의 천들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며 기도와 염원이 하늘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해발 고도를 표시한 돌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이곳이 나근라(那根拉) 산맥임을 알리는 단 하나의 표식.
맞은편 산에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가까이 가보면 그 형상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멀리 산 꼭대기에는 수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곳이 가끔씩 열리는 티베트인들을 위한 천장터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그러나 지금, 그곳은 조용하다.
이곳을 떠나며, 나는 작은 룽다 한 장을 손에 쥐었다.
바람에 실려 날아오를 기도 한 조각.
어쩌면, 나의 소망도 이곳의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흘러갈지도 모른다.
깃발은 바람에 나부끼며,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소망과 축복을 담는다.
색이 바래고 올이 풀려도, 그 위에 새겨진 기도는 여전히 하늘로 향한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깃발은 더욱 세차게 흔들렸다.
마치, 그 바람에 실려 모든 소망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가슴속에 새겼다.
여기서부터 남초 호수까지는 이제 한 걸음뿐이었다.
나근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남초 호수가 손 닿을 듯 가까워 보였다.
곧 도착하겠지. 설렘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호수는 가까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차로 30분이나 더 가야 하는 거리였다.
“티베트의 산과 호수는 전부 그래요.
워낙 크고 광활해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너무 멀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멀고 가까움의 개념조차 다르다는 것을.
남초 호수의 신비로운 전설
우리는 마침내 남초 호수에 도착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물가에서 400m 떨어진 곳에서 하차해야 했다.
걸어가거나, 혹은 야크를 타고 호숫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호숫가에 서서, 숨을 멈췄다.
그 순간,
온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색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과 하늘이 맞닿아 펼쳐진 아찔한 푸른색.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푸름.
그리고 그곳에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과, 멀리 쌓인 만년설.
하늘과 호수가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경이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호숫가로 가서 물을 한 줌 떠 마셔보았다.
남초의 물은 약간 짭짤한 맛이 났다.
부드러웠지만, 내가 기대했던 청량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때로는 앉고, 때로는 눕기도 했다.
촉촉한 풀들이 얼굴을 스치고,
우리는 이 특별한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남초는 단순한 호수가 아니라, 신성한 호수입니다.”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는 우리에게 남초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남초는 제석천(帝释天)의 딸이며,
념칭탕구라(念青唐古拉) 산의 아내라고 한다.
이 여신은 푸른 피부를 가졌고,
두 개의 팔과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보물 항아리,
왼손에는 거울을 들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높은 머리띠로 묶었고,
나머지 머리카락은 등 뒤로 흘러내려 있었다.
그리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호수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남초, 나는 그저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머나먼 길을 건너왔을 뿐이야.”
호숫가에서 1시간 정도 머물렀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렀다.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고,
멀리서 날아온 새들이 호숫가를 맴돌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마저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오래 있을 순 없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고,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머리가 둔하게 욱신거렸고,
살짝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고산지대의 공기가 더 이상 우리를 붙잡아 두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며,
남초와의 작별을 준비했다.
라싸로 돌아오는 길은 우리가 온 길을 되짚어가는 여정이었다.
아침의 설렘과는 다른 감정이 차창 밖을 스쳤다.
고산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낯설었다.
알게 모르게 몸이 지쳐가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남초가 멀어져 갔다.
아름다웠던 호수, 성스러운 바람, 하늘과 맞닿은 푸른 세계.
모든 것이 마치 꿈처럼 흩어졌다.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차가 도로를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고,
어느새 라싸에 도착했다.
도시의 불빛이 창문을 타고 스며들었다.
한국 음식점에 들러 오랜만에 익숙한 음식을 마주했다.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피곤한 몸을 녹여주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긴 하루가 밀려왔다.
그동안 조심스레 미뤄왔던 샤워를 천천히 했다.
차가운 물이 아닌, 온기가 가득한 물줄기가 몸을 감쌌다.
오늘은 두통 없이 숙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