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
- 라싸시 »
- 라모체 사원 【小昭寺】 »
– 왜 라모체 사원을 신성시 하는 걸까요?-
중국어 : 小昭寺
영 어 :Ramoche Temple
위치:八廓街以北500米处
라모체 사원은 4,000㎡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앞쪽은 정원으로, 뒤쪽은 불당과 누각, 회랑 등 부속건물로 되어있습니다.
비교적 규모에 비해 작은 정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3층짜리 건물이 보이는데요. 하얀색 지붕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 그리고 검은 천으로 가려진 라모체 사원 대전을 보실 수 입니다.
돌판으로 되어있는 광장변의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은, 이곳에 오체투지를 하며 참배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으로 뜨거운 한낮에도 이곳에선 항상 기도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라모체 사원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불전입니다. 3층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예비해서 준비해 놓은 공간이고, 2층은 첫 번째 부분은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중간 부분은 주요 집회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3층과 2층은 내부인들만 출입이 허가되며, 관광객들과 외부인은 단지 1층만 관광이 허락됩니다.
맨 아래층인 1층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입구의 아트리움(门庭)과 경전 홀인 징탕(经堂)과 佛殿(불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아트리움은 좐징통(转经筒) 회랑으로 되어있습니다.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비교적 좁은 골목을 돌아 뒤쪽으로 이동하면 바로 경전홀인 징탕이 나옵니다.
징탕안에는 기둥이 약 30개 정도 들어서 있는데요. 그 중 높이 6.2m, 직경 0.46m의 큰 기둥 4개가 2층과 3층을 통과해 천장까지 닿아 있습니다.
징탕의 양 옆의 회랑에는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이 티벳인들이고, 가끔 한족들과 관광객이 보이곤 합니다.
줄 서 있는 대부분의 사람 손에는 입구의 보온병에서 판매하는 수유(酥油)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보온병 대신 하다(哈达)를 들고 있거나 지폐를 꺼내 들고 있기도 합니다.
징탕을 중심으로 많은 줄이 서 있는 좌측 줄이 참배를 위한 줄이고, 우측 줄이 일반들이 참관을 하는 줄입니다.
좌측 줄에 서 있는 참배객들은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본인의 순서가 되면 징탕 뒤의 불전에 있는 8살 모습의 석가모니 불상 앞에 도착합니다. 도착 후 가지고 온 보온병을 불상 앞에 서 있는 승려에서 건네줍니다.
보온병을 건네받은 승려는 불상 앞의 기름을 담는 도자기에 보온병의 수유를 모두 쏟아 놓고 오른쪽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참배객은 승려가 수유를 쏟는 동안 참배를 하고 바로 옆의 빈 보온병을 가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곳에서는 시간을 끌어서도 안 되고 바로 바로 지나가야 합니다.
불상앞에 도착 후 떠나기 까지는 30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입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 채 30초도 안 되는 참배를 하면서도 누구 하나 불평이 없었으며, 만족함이 가득 한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가득합니다.
라싸에서 가장 성스럽고 큰 사원이 조캉 사원이지만, 현지의 티벳인들은 조캉사원이 너무 관광객이 많고 상업성으로 변질되었다 하여, 조캉 사원보다는 이곳 라모체 사원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럼 티벳인들은 왜 라모체 사원을 신성시 하는 것일까요?
티벳의 선조인 토번을 통일한 송첸캄포는 수도를 융부라캉이 있는 체탕에서 이곳 라싸 지역으로 옮기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는데요. 그중 하나가 당나라의 공주와 혼인을 하는 거였습니다.
처음에 당은 토번의 세력을 우습게 보고 거절을 하자 송첸캄포는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로 쳐들어옵니다.
지금의 사천성 구채구 밑의 송판이란 지역까지 처들어오 자 당나라 태종은 병부상서인 후군집을 보내 토번의 공격을 물리치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공격을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토번의 세력을 우습게 보지 못하고, 송첸캄포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처음에 당은 토번의 세력을 우습게 보고 거절을 하자 송첸캄포는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로 쳐들어옵니다.
지금의 사천성 구채구 밑의 송판이란 지역까지 처들어오자, 당나라 태종은 병부상서인 후군집을 보내 토번의 공격을 물리치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공격을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토번의 세력을 우습게 보지 못하고, 송첸캄포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이때에도 당태종은 맘을 정하지 못하고, 송첸캄포를 대신해서 온 가르통첸에게 몹시 어려운 문제를 내어서 방해하려고 하였으나, 가르통첸은 모든 문제를 풀고 결국은 당 태종의 맘을 돌려 문성 공주의 송첸캄포에게 시집 보내기로 합니다.
사실 문성 공주는 당나라의 공주이지만 황족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쁘고 무척 총명하여 당 태종에 의해 공주로 책봉된 상태였습니다. 문성공주는 천문과 지리에 아주 밝았고, 점을 칠 줄도 알았으며, 불교를 열심히 믿는 23살의 아름다운 공주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멀리 떨어지고 알지 못하는 토번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간다는 사실에 걱정도 많이 하고 실망도 많이 하였으나, 가르통첸의 설득과 문성공주를 원하는 이유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자, 마음을 고쳐먹고, 티벳으로 가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합니다.
방대한 당나라의 서적과, 석가모니의 불상과 곡물, 과일, 채소의 종자들을 가지고 티벳으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송첸캄포 왕은 공주 일행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의 칭하이성 근처까지 마중 나왔으며, 문성 공주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당나라에서 보내온 한족의 옷을 입고 문성 공주를 맞이합니다.
문성 공주와 송첸캄포 왕은 불상과 문성 공주가 가지고 온 많은 물건을 가지고 라싸로 돌아옵니다. 오는 동안 수많은 티벳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돌아왔습니다.
문성 공주가 가지고 여러 가지 물건 중 가장 귀한것은 천년이상이 된 석가모니의 등신상이었습니다. 석가모니 12살 모습을 하고 있는 등신상으로 본래는 황실 사원인 장안 즉 지금의 서안 개원사에 있었던 것으로 문성 공주가 가지고 토번으로 가기 전에 이미 천 년 이상이 된 귀중한 불상이었습니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제자들이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생전의 모습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석가모니의 모습을 닮은 불상을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그러자 석가모니는 8살, 12살, 25살의 석가모니 상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후에 8살 불상은 네팔에, 12살 불상은 중국으로, 25살 불상은 인도로 옮겨졌는데요.. 그중 12살 불상을 문성 공주가 토번으로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마차에 싣고 라싸에 들어오던 문성 공주의 일행은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불상을 실은 마차의 바퀴가 도로의 구멍에 빠졌는데,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천막을 짓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참배를 하였는데요. 천문과 지리에 밝고 점을 칠 줄 알았던 문성 공주는 그곳이 마귀가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에 사원을 지어 불상을 안치해야 일반 백성들이 편안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바로 사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라모체 사원 자리입니다.
문성 공주는 당나라를 떠날 때 같이 온 목수들을 이용하여 건물을 당나라식으로 건설하였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동쪽을 바라고 건설하였습니다.
문성 공주가 12살 석가모니 상을 안치할 라모체 사원을 잘 건설한 것을 보고, 문성 공주에 부탁을 해서 자신이 가지고 온 8살 불상도 안전하게 안치할 조캉사원을 건설할 것을 부탁합니다.
이에 문성 공주는 자신이 데리고 온 당나라 장인들과 네팔의 장인등을 이용하여 지금 조캉사원을 만들어 8살 불상을 안치하게 합니다.
당시 네팔의 공주가 문성 공주 보다 먼저 시집을 왔기 때문에 조캉사원이 문성공주의 라모체 사원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건설하였습니다.
후에 송첸캄포 왕이 죽고 시간이 흘러 라모체사원은 점점 잊혀지고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송첸캄포의 손자인 망송망첸이 즉위하자, 당시 당나라의 황제인 고종은 군사를 파견하여 12살 석가모니 상을 회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망송망첸은 12살 석가모니 상을 조캉사원의 밀실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입구를 막아버려 불상을 다행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치송데첸이 왕으로 즉위하자, 치송데첸은 당나라 금성 공주에게 청혼을 하였고, 금성공주는 치송데첸과 결혼을 하기 위해 이곳 토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토번에 들어와서 보니 문성 공주가 가지고 온 12살 석가모니상은 대조사 밀실에 보존되어 숨겨져 있었고, 네팔에서 온 8살 불상은 대조사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네팔과 인도 쪽에서 넘어온 불교가 본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점점 세력을 넓혀가자, 금성 공주는 상대적으로 당나라의 불교가 쇠퇴하는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금성 공주는 12살 석가모니 상을 꺼내어 8살 불상이 있는 자리에 놓고, 8살 불상은 라모체 사원으로 보내어, 두 불상이 서로 바뀌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조캉사원에는 문성 공주가 가지고 온 12살 석가모니 상이 안치되어있으며, 이곳 라모체 사원에는 네팔에서 온 8살 불상이 안치된 것입니다.
TIBET OFFICE
TIBET TIANJIAO INTERNATIONAL TRAVEL AGENCY LIMITED COMPANY
김 경봉 부장
위챗 : kkkjjf
H.P : 133-0899-1199
KOREA OFFICE
김용무 부장
사업자번호:546-04-00843
카카오톡 : chinatour
위챗 : tourseek
H.P : 010-2488-7920
Tel : 02-737-0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