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와 붉은 모자, 그 길은 어디에서 갈라졌습니까
라싸(拉萨)를 떠나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티벳(西藏)의 공기는 점점 더 얇아지고, 이름보다 먼저 전해지는 전통 하나가 숨처럼 따라붙습니다. 까르귀파(噶举派), 말로 설명되기보다 발로 이어지는 계보, 스승의 숨이 제자의 호흡으로 건너가는 길 위에서 태어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소리가 아니라 전해진 숨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샹빠 까르귀(香巴噶举)는 이미 시간 속으로 스며들었고, 닥뽀 까르귀(达布噶举)는 아직도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르빠(玛尔巴)의 번역, 밀라래빠(米拉日巴)의 고독한 수행, 닥뽀 라제(达布拉杰)의 정리된 흐름이 한 줄로 이어지며, 그 길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발걸음으로 남았습니다.
숨은 점점 얕아지고, 발은 점점 느려지지만, 이 계보는 끊기지 않습니다.
갈라지는 가지,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길
닥뽀 까르귀에서 길은 네 방향으로 나뉘었습니다. 깔마 까르귀(噶玛噶举), 찰빠 까르귀(蔡巴噶举), 빽또 까르귀(拔戎噶举), 빡죽 까르귀(帕竹噶举).
그리고 다시, 빡죽 까르귀 안에서 여덟 갈래의 흐름이 더 퍼져나갑니다. 이름들은 흩어지지만, 방향은 하나로 유지됩니다.
길은 나뉘었지만, 걸음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중 하나, 가장 오래된 전통 하나로 시선이 멈춥니다.
왜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까
까르마 까르귀(噶玛噶举). 이곳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방식이 태어났습니다. 환생, 뚤꾸(活佛)라 불리는 전통입니다.
뒤숨 켼빠(都松钦巴)는 자신의 끝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다시 태어날지를.
그 말은 기록이 아니라 기다림이 되었고, 결국 한 아이로 나타났습니다. 까르마 빡시(噶玛拔希).
그 순간, 티벳 불교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방향이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전통은 이후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로 이어지지만, 시작은 여기였습니다.
검은 모자와 붉은 모자
같은 길 위에서, 두 개의 상징이 나뉘어 서 있습니다. 검은 모자와 붉은 모자.
검은 모자는 까르마빠(噶玛巴)입니다. 그 시작은 몽케 칸(蒙哥汗)의 손에서 내려왔습니다. 금실로 장식된 모자 하나와 금인 하나.
이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는 대인혁빠(得银协巴)를 남경으로 불러 대보법왕(大寶法王)이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그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제17대, 우겐 틴라이 도르제(鄔金欽列多傑)와 틴라이 타예 도르제(廷列泰耶多傑), 두 명의 계승자가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추부쓰 사원(楚布寺)이 있습니다.
하나의 모자는 권위를, 하나의 이름은 시간을 이어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자, 붉은 색.
랑중 도르제(让琼多吉)의 제자 삽빠 성게(扎巴僧格). 그는 원 황실로부터 또 하나의 모자를 받았습니다. 붉은 모자.
샤마르빠(Shamarpa). 검은 모자의 아우라 불리는 계보.
그 시작의 장소는 내랑 사원(乃朗寺). 출뿌로 가는 길 중간, 멈추지 않으면 지나쳐버리는 위치에 있습니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검은 모자와 붉은 모자, 두 개의 계보는 나뉘어 있지만, 하나의 전통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환생은 이어지고, 이름은 반복되며, 장소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이 계속 걸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티벳(西藏)의 이 전통은 설명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 숨이 가빠지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느껴집니다.




